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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포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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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일 | 2019-06-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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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해 전 야구경기를 보러 갔다가 상대팀 팬이 행패를 부리는 바람에 큰 사고가 날 뻔했다. 그때 다친 정강이 쪽 상처가 몇년 동안 지워지질 않았다. 흉이 질까 걱정하는 가운데 한동안 내 머리를 지배한 생각은 이런 것이었다. “○○팀 팬들은 매너가 더러워.” 고등학교 과정을 이수한 사람이라면 기억들 할 것이다. 전형적인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다.
어디 나만 그럴까. 우리 사회에서는 선을 넘는 일들이 종종 빚어진다. ‘여자는 운전을 못 해.’ ‘기성세대는 꼰대야.’ ‘요즘 10대는 싸가지가 없어.’ 이를 두고 개인주의적 오류라고도 부른다. 자신이 관찰한 몇몇 개인의 특성을 싸잡아서 그들이 속한 집단 전체의 속성으로 판단하는 것이다. 실제로 안타까울 때가 많다. 예컨대 서남아시아계 이주민이 범죄를 저지르면 그들 전체가 범죄 성향이 있는 것으로 매도당한다. 난민 브로커 뉴스가 나오면 모든 난민 또는 난민신청자가 가짜 난민으로 취급받는다. 이게 바로 편견이고 차별이다.
물론 이런 소식들이 가짜뉴스만은 아닐 수도 있다. 일부 게이 남성이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HIV)에 감염됐을 수 있고, 일부 무슬림이 테러리스트일 수는 있다. 그러나 자신이 직간접으로 경험한 몇몇 사례나 부분적 ‘팩트’를 두고 누군가의 성적 지향이나 민족적·종교적 배경 전체를 뭉뚱그려서 비난한다면 스스로 교양 부족과 무지를 드러내는 일이 아니고서야 무엇이겠는가.
나는 여태껏 순진하게도 이런 문제들이 도덕성 또는 사회성의 문제라고만 생각했다. 그래서 사람들을 설득하면 차별도 줄겠지 싶었다. 다른 사람을 차별하는 것은 정의롭지 못한 일이니까. 그런데 웬걸, 우리 모두가 경험하고 있듯이 설득이 안 된다. 교실에서, 직장에서, 인터넷에서, 소셜미디어에서, 그리고 광장에서. 그 모든 설득이 실패한다. 게다가 감정적 호소도 아니고 이성적 논리로 설득하려고 하면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일으킬 정도다. 오늘날 넘쳐 나는 팩트 전쟁이 대표적인 방증 아니겠는가.
그래서 드는 생각이 이건 불의의 문제가 아니라 무지의 문제일 수도 있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 확증편향 등의 문제를 두고 과학자들은 감정 기능과 관련된 뇌 부위가 활성화돼서 나타나는 일이라고 본다. 어떤 여자 때문에 ‘기분이 나빴는데’ 그걸 여자들의 문제라고 이해하는 것이다. 거꾸로, 특정 국가의 근대화와 발전이 원만하지 않다고 해서 그 나라 출신의 이주민을 만나면 ‘돈만 밝히고 노동 윤리가 없을 거야’라는 식으로 판단해버리는 것이다.(특별히 이 경우는 생태학적 오류라고 부른다)
이토록 사려 깊지 못함은 불의의 문제일까, 무지의 문제일까. 통계를 보면 근 20년 동안 우리나라의 고등학교 취학률은 연평균 90% 이상이라는데 단순히 무지의 문제는 아닌 것도 같다. 어지간한 사람이라면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나 확증편향 같은 문제를 이미 알고 있지 않겠는가. 그리고 대학수학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개인주의적 오류나 생태학적 오류 정도는 피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도 우리는 이러저러한 추론 방식이 오류라는 걸 뻔히 알면서 종종 그 유혹에 넘어가곤 한다.
그리하여 궁극적으로 이런 의문을 품어본다. 우리는 왜 좀 더 사려 깊을 수 없는 걸까. 우린 정말로 무엇을 배워온 걸까. 분명히 배운 단어들인데 왜 그 의미들은 몸에 배지 않은 걸까. 노파심에서 말하자면 어떤 특정 대상을 가리켜서 하는 비판이 결코 아니다. 다만 나는 우리가 일찍이 배우는 몇몇 중요한 내용을 ‘죽은 지식’이 아니라 ‘산지식’으로 가르치고 배웠으면 적어도 지금보다는 커뮤니케이션 환경이 더 좋았을 것이란 생각을 하곤 한다. 배운 것만 잘 실천해도 훨씬 좋을 텐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