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
- 아포리아
- 조회 수 96
발표일 | 2019-09-23 |
---|
늘 궁금했다. 민간학술단체에 있다 보니 가지는 고민이다. 어떻게 해야 강좌나 워크숍에 더 많은 사람이 찾아올 수 있을까? 물론 사업 목적은 보통 정해져 있다. 연구 성과를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리는 것, 인문사회과학적으로 중요한 쟁점을 더 많은 사람과 공유하는 것, 그럼으로써 연구소 재정에 기여하는 것 등이다.
홍보를 잘하면 될까? 페이스북은 이미 ‘고인물’이다. 그러니 트위터 이용자를 노려야 한다. 아니다. 실제 지불능력이 있는 사람은 인스타그램에 있을지 모른다. 대세는 그쪽이다. 그보다 커리큘럼을 잘 짜야 하지 않을까? 일단 잘 팔리는 아이템이 사람을 모은다. 아니다. 무분별한 커리큘럼은 연구소 정체성을 해친다. 시대적 고민을 나눌 수 있는 강좌여야 한다. 아니다. 그것으로도 불안하다. 그 정도는 다른 단체에서도 하고 있으니 우리는 아예 전문적인 프로그램으로 타기팅을 명확하게 가져가야 한다.
그러는 동안 소위 ‘현실자각타임’이 오기 시작했다. 어떤 노력을 해도 손님들 발길이 전만 같지 않은 것이다. 아무리 잘돼 봤자 진행비와 강사료 등을 제외하면 손익분기를 겨우 넘기는 수준이었다. 오히려 사업 진행에 들어가는 갖가지 품에 에너지만 고갈됐다. 출구를 찾아야 했다. 적어도 왜 안되는지에 대해서는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잘된다고 소문난 집들은 어떤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시야를 돌리니 ‘트레바리’ 같은 독서토론모임이 눈에 들어왔다. 적잖은 회비에도 사람이 바글거린다는 소문이었다. 셀럽과의 만남? 독서와 토론 경험? 네트워킹? 어떤 매력 때문인지는 몰라도 이들 사업은 어느새 ‘힙’한 스타트업 아이템으로 올라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신 포도에 등 돌리는 여우처럼 거리를 둬야 했다. ‘그래도 지식애호가를 위한 서비스 노동에 복무하는 건 영 별로다.’
이번에는 시야를 반대로 돌려봤다. 그랬더니 각종 공공기관에서 직접 제공하거나 간접 지원하는 무료 강좌 사업들이 눈에 들어왔다. 우리 연구소의 고려 대상일 수도 있는 대중적 프로그램과 강사진으로 채워져 있었다. 우리 입장에선 무료 강좌를 할 수도 없고 높은 수준의 강사료를 줄 수도 없는데…. 이때였다. 어떤 깨달음이 왔다. ‘무료 강좌가 많아져서 민간 강좌 생태계에 교란이 생겼던 거구나. 황소개구리들이었어.’
고민이 생기기 시작했다. 우리도 저 안으로 들어가 공공지원을 받으며 강좌 사업을 해야 하는 건가. 그래서 일단 시험 삼아 ‘서울자유시민대학’이란 곳에 사업 지원을 해서 강좌를 하나 열긴 했는데 아직 명확한 판단은 나오지 않고 있다. 좋은 기회에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긴 하지만 그게 어떤 배치 속에서 일어나는 일인지는 꼼꼼하게 대차대조를 해봐야 하기 때문이다. 사업이 끝나봐야 알 일이지만, 그냥 차라리 틈새의 틈새라도 발견하고 독립적인 강좌 생태계를 지키는 게 옳았다는 결론을 만날지도 모른다.
그러다 문득 어떤 큰 그림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우리 사회가 지난 십수년 사이에 평생교육, 평생학습 체제에 접어들었다는 사실이 떠오른 것이다.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안드라고지(andragogy)가 강조되는 세상이라 하지 않던가. 많은 경우에서처럼 여기에도 서로 다른 사회적 기대와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것 같다. 누군가는 ‘민주시민교육’의 기회를 발견할 수도 있고, 또 누군가는 융복합 시대에 발맞춘 ‘인적 자본’ 구축 논리에 경악할 수도 있을 것이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당장 다음 분기 강좌 기획부터 고민투성이가 됐다. 세상은 점점 더 많은 것을 곤란하게 만들지 않는가. 민주시민과 인적 자본의 흐릿한 경계 위에서는 아무래도 더 위험한 사유가 무엇일지에 대한 고민이 앞서야 할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