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올로기 세미나가 끝나고 있습니다. 이번 세미나는 사실 알튀세르 읽기를 과제로 삼은 이상, 발리바르와 그의 스피노자라는 쟁점을 열어두면서 끝날 것이 어느 정도 예상됐습니다. 세미나의 논의들을 잠깐 재점검해볼까요.
우선 이데올로기 비판과 정치의 문제라는 쟁점이 있었습니다. 대다수 문화주의자들이 생각하는 것과 달리, 이데올로기 비판은 상징체계에 관한 문화분석으로는 축소될 수 없지요. 이데올로기 비판은 주체화양식 비판과 더불어 필연적으로 정치라는 쟁점을 불러 일으키는데, 이는 오직 생산양식 비판을 통해서만 완결성을 가질 수 있습니다(그 역도 마찬가지입니다). 또한 이는 이론과 정치를 어떻게 함께 사고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와도 연결됩니다. 그런 까닭에 모순과 과잉결정이라는 문제는 표상체계 분석뿐만 아니라 유물론적 변증법 전반을 관통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두번째로 마르크스주의의 난점이라는 쟁점이 있습니다. 지젝의 말대로 요즘 시대에 이데올로기가 유령처럼 정치의 발목을 붙잡고 있다지만, 이는 마르크스와 엥겔스에게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여 이데올로기는 이데올로기, 물신성, 세계관 등의 다양한 형태를 통해 출현하지요. 여기서도 이론과 정치의 결합은 일정한 아포리아를 만들어낼 수밖에 없는데 왜냐하면 이데올로기는 유물론적 변증법에서 반드시 필요한 논의이지만 이것이 정치적 기획에 진입하는 순간 이론과 정치의 전망을 교란시키기 때문입니다.
세번째는 프로이트-마르크스주의 그리고 라캉주의의 난점이라는 것이지요.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는 것처럼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 정식화는 마치 프로이트와 라캉을 체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마르크스와 프로이트 사이의 일정한 상동성 때문에 둘의 결합은 많은 사람들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해보입니다(지젝이 대표적이지요). 그러나 여기에는 몇 가지 곤란이 야기됩니다. 잠시 일별하자면 이론적으로 프로이트주의와 마르크스주의 사이에는 분석단위가 애초부터 달랐다는 것, 그로 인해 서로가 서로를 보충해줄 수 있을 것 같지만 실제의 접합효과는 이론적 절충주의를 쉽게 탈피하지 못한다는 것, 또한 역사적 자본주의 분석과 정치의 가능성이라는 전망이 불투명하다는 것을 들 수 있습니다. 어쩌면 알튀세르를 프로이트-마르크스주의자로 오해하는 순간 그의 이데올로기론이 구조기능주의처럼 보이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을지도 모르겠네요.
마지막으로 프로이트 이후에 무엇이 오는가 하는 질문이 남습니다. 알려진대로 거기에는 스피노자-마르크스주의라는 쟁점이 있습니다. 사실 알튀세르는 세간의 오해와는 달리 라캉주의를 격렬하게 비판했으며, 마르크스주의에 외적인 자원으로 마키아벨리와 스피노자에 뿌리를 두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마키아벨리는 구조와 정세의 결합 혹은 이론과 정치의 결합이라는 토픽을, 스피노자는 상상계에 대한 역사적 분석을 통한 주체화양식 비판을 제시해줍니다. 여기서 발리바르는 스피노자를 통해 이데올로기를 두 번째 토대로 상정하는 급진적인 테제를 제출합니다. 계몽주의 사상에서 이야기하는 정치적인 것의 자율성(해방의 정치)의 한계를 지적했던 마르크스와 스피노자는 사실 정치의 타율성(변혁의 정치)을 제안한 것이었으며, 여기서 마르크스는 정치경제학 비판을 스피노자는 이데올로기 비판을 각자의 고유한 영역으로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지요.
... 우리 세미나는 대략 이러한 논의구조를 가지고 진행됐습니다. 물론 서사적 절차대로라면 발리바르가 말한 세번째 정치, 즉 시빌리떼의 정치에 관한 논의로 가는 것이 옳을 겁니다. 발리바르는 해방의 정치와 변혁의 정치를 결합시켜도 남는 문제는 폭력이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선 시빌리떼라는 시민적 싸가지(?)가 중요하다고 역설하니까요.
그런데 이에 앞서 두 가지 논점이 우리에게 주어진 것 같습니다. 우선은 역사적 자본주의 분석이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스피노자-마르크스주의 연구라는 것입니다. 전자가 이데올로기론의 외재적/표출적 분석이라면 후자는 내재적/심층적 분석이라 할 수 있겠네요. 달리 말해 우리 세미나가 앞으로 두 가지 방향성을 가지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이 두 가지가 정리된 이후에 비로소 폭력 비판이라는 문제로 넘어갈 수 있을 겁니다.
해서, 오는 3월부터 6월까지 두 가지 세미나를 구상 중입니다.
1. 하나는 바로 역사적 자본주의와 대중문화 연구를 주제로 삼습니다. 모더니티가 출현한/된 식민지 시기부터 2000년대에 이르는 대중문화의 지형을 역사적 자본주의라는 쟁점과 연결시키는 시도입니다. 사실 발리바르가 마르크스의 이데올로기론이 가진 난점을 지적했던 맥락 중에 하나가 바로 '역사 없는 역사성'이라는 것이었지요. 그래서 역사적 자본주의라는 논점이 형성된다고 볼 수 있는데 이 부분을 채워줄 수 있는 건 결국 월러스틴과 아리기 등의 세계체계론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를 문화론과 연결짓는 건 앤서니 킹과 피터 J. 테일러 정도가 있구요. 어쨌든 이 세미나는 주제별로 식민지 근대성, 문화적 아노미, 문화민족주의와 파시즘, 훈육과 통제사회, 대량/과잉 소비체제, 신자유주의체제 등을 이야기할 예정입니다. 또한 이러한 쟁점들을 세계체계론에 입각한 한국에서 자본주의발전과 연동하는 세미나가 될 것입니다. 이 세미나는 제가 출강하는 수업과도 관련된 것인데, 그쪽과 상의해보고 연구소 세미나와 공동운영하는 방식을 모색해보도록 하겠습니다.
2. 다른 하나는 스피노자-마르크스주의의 계보를 주제로 삼습니다. 스피노자가 정치철학의 경계 안으로 현실화된 것은 전통적으로 이어져 오던 범신론적 해석에서 벗어나 역능론과 관계론의 함의를 인정받기 시작하면서부터입니다. 일단 진태원 선생님의 박사논문을 필두로 해서 국내에 번역된 논의들을 중심으로 마슈레, 마트롱, 들뢰즈, 네그리, 발리바르 등의 저작 6~7편 정도를 같이 읽는 세미나가 될 전망입니다.
... 어쨌든 이 두 세미나를 병행하려는 생각인데, 개인적인 여건 때문에 이게 과연 가능한 것인지 그리고 얼마나 성취감을 가질 수 있을지는 여전히 불투명합니다. 모쪼록 회원님들과 같이 공부하고 연구하는 좋은 기회가 되기를 희망하겠습니다. 댓글로 의견 남겨주세요. ^^